<추석연휴에 볼만한 정치 영화 10편>
: 명절이면 이런 거 많이 나오죠. 네, 정치발전소 사회정책연구센터에서 준비했습니다. 정치영화 10선입니다. 재미없다는 항의는 받지 않습니다. 정치영화가 재미있겠어요? 그런 기대는 접고, ‘졸리면 자도 된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보세요. (잠이 안 올 때 보셔도 좋겠습니다.)
-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1939, 프랑크 카프라)
“의로운 일은 외로운 일이로군요”
정치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치의 기본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잭슨시의 상원의원이 임기 중 갑자기 사망하자 시의 또 다른 상원의원 페인, 재력을 가진 후원자 테일러와 주지사는 후임자를 물색한다. ‘소년 레인저’ 대장 스미스씨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으니 한 집에 ‘두 표’를 얻을 수 있으며 순진한 사람이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로 상원의원에 발탁된다. 큰 이권이 걸려있는 댐 건설을 앞두고 있었기에 이에 반대하지 않을 인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치 문외한 평범한 보통 사람 스미스씨가 정치인이 되었다. 어떤 일이 펼쳐질까? 짐작하겠지만 순탄치 않다. 정치를 괜히 시작했다 땅을 치고 후회할 만한 역경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 개봉 당시 의회를 지나치게 부패한 집단으로 몰았다는 항의와 ‘빨갱이 영화’라는 여론이 있었다고 한다. 1930년대 미국 정치와 2015년 한국 정치가 겹쳐 보이지만 그게 몽땅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정치인 스미스씨’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든든한 후원자 ‘소년 레인저’들도! (이 영화에는 그 유명한 ‘필리버스터’ 장면이 나온다. 1930년대 미국 의회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보너스)
- 스윙보트 (2008, 조슈아 마이클 스턴)
스윙보트는 유권자에게 ‘교과서’ 같은 영화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공익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상당히 재밌다.(그나마 재밌다!)
투표는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가난하고 무능력한 아빠 버드와 투표는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연방의회 의장이 꿈인 딸 몰리. 몰리는 학교 숙제를 하려다 아빠를 전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만들어 버린다. 버드의 한 표가 미국 대통령을 결정하게 된 상황. 뉴멕시코주 작은 마을 텍시코에 양당 선거 캠프가 차려지고, 단 한명의 유권자를 위한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여기 특종을 노리는 언론이 끼어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한 때 꿈이 있었으나 생활에 찌들어 삶의 의미조차 잃어버린 기성세대에게 정치는 남의 일이 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삶은 달라질 것이 없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정당의 정체성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정치인들에게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몰리다.(연기도 제일 잘한다.) 감독은 몰리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다행이다. 몰리로 인해 선거는 선거답게 치루어 진다. 우리의 몰리가 정치에 실망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 밀크 (2008, 구스 반 산트)
영화 밀크는 인권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실존인물 ‘하비 밀크’ 이야기다.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지고, 괜히 마음 따뜻해진 건 나뿐인가?
밀크는 40세 이전에는 정치와 인권운동에 관심이 없었다. 솔직하지 못했던 인생을 반성하며 남은 삶은 자유롭게 살고자 연인 스콧 스미스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간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카스트로 지역(Castro)은 미국 각지의 성소수자들이 모여든 곳이었다고 한다. 밀크는 여기서 인권운동을 시작한다. 인종, 나이,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꿈꾸었던 그는 시의원 선거에 출마하고, 세 번 실패 끝에 1977년 마침내 시의원에 당선된다. 그의 꿈은 길게 가지 못했다. 그의 임기는 단 11개월이다. 1978년 11월27일, 피살되었기 때문이다. 짧은 재임기간 그는 ‘동성애자 인권 조례’를 제정한다. 그로 인하여 성소수자의 인권은 정치적 의미를 획득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은 그에게 미국 최고의 훈장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추서하였다. 2015년, 미국 대법원은 동성애자 결혼을 합법이라 판결하였다. 며칠 전 오바마는 동성애자 에릭 패닝을 국방장관에 지명했다. 사회는 점진적으로 변한다. 변화를 위해 노력한다면 말이다.
- 왝더독 (1997, 베리 레빈슨)
선거는 뛰어난 기획·연출가의 손에 의해 조작된 결과일까? 정치는 누가 더 세련되게 시민들을 속이는지 대결하는 것일까? 정치 자체가 일종의 ‘만들어진 현실’이라면 민주주의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대통령 선거를 12일 앞둔 상황에서, 재선이 확실시 되던 현직 대통령이 성추문에 휘말린다.(성추문의 진위는 밝혀지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무려 ‘전쟁’이다. 전쟁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겠냐고? 그럴 리가 없지 않나.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전쟁은 영화 속 영화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진짜 전쟁이라 믿는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방법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문제’로부터 시선을 돌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큰 사회적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고전적 방법이다. 참신하지도 않은데 매번 통한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볼 것은 성추문이 발생했을 때 백악관 참모들의 태도다. 아무도 진실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대통령 재선만이 관심사다. 모든 등장인물이 ‘사기꾼’이다. 한 명 쯤은 바른 말하는 사람이 있어도 좋으련만.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추천하지 않는다. 사실이라고 착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음모론은 민주주의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혹여 음모가 있다 한들, 그걸 상대할 만한 정보와 힘이 시민에겐 없다. ‘음모’가 현실화 되지 못하게 제어할 방법은 결국 ‘정치’ 뿐이다.
- 킹메이커 (2011, 조지 클루니)
조지 클루니가 대선 가도를 달리는 주지사로 나온다. 반듯한 그의 외모는 훈훈함을 선사하지만 영화 내용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여기서도 성추문이다. 그런데 그게 좀 복잡하다. 앞의 영화 <왝더독>의 참모들은 ‘문제 해결’에 주력했다. 대통령은 영화에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는데 참모들이 알아서 움직인다.(그럼에도 왝더독의 대통령은 엄청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모리스 주지사는 ‘사고치는 정치인’으로 나오고, 참모들도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진심이나 의리보다 손익 계산이 앞선다. 문제 ‘해결’보다 문제를 ‘활용’하여 자기 입지를 넓히고자 한다. 살아남기 위해, 이기기 위해 네 편도 내 편도 없다. 그런데 이게 묘하게 인간적이고 보다 현실적이다.
정치는 무균실의 실험이 아니다. 정치는 인간이 하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의 고뇌, 인간의 갈등, 인간의 약함 모든 게 그대로 다 있다. 문제는 언제나 있다. 사적영역의 부도덕을 용인해줄 이유는 없지만, 과장된 비난이 그다지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기왕에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면 스캔들보다 공적영역의 일에 집중하는 게 정치 발전을 위해 더 나은 것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주제와 상관없는 관전 포인트도 있다.(이게 더 재미) 조지 클루니는 유명한 오바마 지지자다. 영화엔 그에 대한 오마쥬가 있다. 또, 실제 대선 후보들의 TV 토론, 인터뷰에서 나왔던 질문을 갖다 쓴 만큼 현장감이 느껴진다. 선거운동 전 볼만 하다.
- 프로스트 VS 닉슨 (2009, 론 하워드)
‘인터뷰의 정석’같은 영화다. 언론인 프로스트가 전직 대통령 닉슨을 인터뷰하는 게 영화의 전부다. 질문과 답변만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은 대사(시나리오), 연기, 연출이 모두 빼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얼굴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하여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빛, 떨리는 입술 등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극적 긴장감을 더한다. 실제 인물과 영화 속 인물을 교차 편집하거나 투샷으로 잡다가 상황에 따라 인물 포커스를 옮기는 화면은 ‘영상’이 그 자체로 주제를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정치와 미디어’ 사이의 긴장감에 대한 것이다.
1970년대 초 미국을 뒤흔든 ‘워터게이트’는, 닉슨대통령의 재선이 불안해지자 백악관 참모들이 민주당 선거운동본부에 도청장치를 가설한 사건이다. 닉슨은 이로 인해 의회의 탄핵에 직면하자 대통령직을 사임한다. 사임 이후 닉슨은 이 사건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기를 꿈꾸는 한물 간 언론인 프로스트가 4일 동안 닉슨을 인터뷰한다. 1977년 닉슨에게 ‘대국민 사과’를 받아낸 실존인물 프로스트는 2013년 사망했다. 이 영화에는 “대통령의 불법은 불법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사실 닉슨은 공격적인 세계전략을 포기한다는 ‘닉슨독트린’을 발표하고, ‘핑퐁외교’ 끝에 중국과 수교를 맺고, 베트남과 정전협정을 타결한 공적의 주인공이다. 닉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닉슨>을 추천한다. 케네디 같은 명문가 출신이 아닌, 가난한 집안 출신인 그의 정치역정을 알 수 있다.
- 굿나잇 앤 굿럭(2005, 조지 클루니)
역시 대결이다. 이번에는 상대가 상원의원이다. 그런데 대통령 못지않게 ‘쎈’ 상대다. 1950년대 초반, 미국 사회를 레드 콤플렉스에 빠뜨렸던 매카시 의원 이야기다. 미국 정부 내에 2백 명 이상의 공산당원이 활동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말로 시작된 매카시 선풍이 ‘핵폭풍’이 되었던 이유 중 하나로 바른 말 하는 언론이 없었기 때문이라 지적하고 싶다. 다행히도, 언론의 양심이 다 사라진 건 아니었던지라 머로우 뉴스팀이 매카시를 제압(?)한다. 머로우 역시 실존인물이다. 이 영화가 멋진 이유는 ‘머로우’ 개인이 아니라 ‘머로우 뉴스팀’을 주목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치(인)와 언론(인)의 대결이라는 구도는 같지만 <프로스트 VS 닉슨>과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위 영화가 ‘클로즈업’이라면 이 영화는 ‘풀샷(공간 및 인물 전체가 한 화면에 나옴)’이다.
아, 우디 알랜의 <프론트>, 로버트 드니로가 나오는 <비공개>도 같은 소재의 영화다. 우디 알랜 알레르기 없다면 <프론트>가 더 낫다. 무게감 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며 <비공개>를 추천한다. 물론, 조지 클루니를 보려면 <굿나잇 앤 굿럭>이다. (후훗. 이 영화에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나온다. 65년생들은 분발해야 한다.)
멋있게 마무리 하자. 좋은 정치를 위해서는 좋은 언론이 필요하다.
“좋은 밤 되시고, 행복하십시오(Good night, and good luck.)”
- 로스트 라이언즈 (2007, 로버트 레드포드)
출연진이 어마어마하다. 톰 크루즈, 메릴 스트립, 로버트 레드포드라니. 이런 영화는 그냥 봐야한다.(라는 말만 믿고 보면 안 된다.) 정치학 교과서에 나올 법한 대사가 난무하니 어느 정도는 (졸릴 것을) 각오해야 한다. 재미없다는 말은 아니다. 얼굴만 봐도 재미는 있다. 단지, 대사가 좀 많다는 뜻이다. 정치인과 기자가, 교수와 학생이 쉬지 않고 말한다. 웃기지도 않고, 극적이지도 않다. 그냥 말을 할 뿐이다. 우후.
톰 크루즈는 정치 시스템을, 메릴 스트립은 언론계를, 로버트 레드포드는 지식인을, 앤드류 가필드(누군지 모를 테니, 설명하자면 ‘학생’ 역)는 청년 세대를, 전쟁에 나간 두 제자는 소수자를 상징한다. 각자의 대사는 각자의 입장에 최적화되어 있다. 대화를 나누지만 상대를 이해하지 않는다. 자기 입장에서 할 말을 할 뿐이다.
가장 열심히 공부하던 제자가 정치학을 외면하자 선생은 그를 불러 이유를 묻는다. 제자는 흥분하여 답한다. “정치과학은 사회과학이 아니에요. 유권자를 기만하는 학문이에요.” 이에 교수는 미동도 없이 말한다. “그리스 가봤나? 가봤으면 알 거야. 우리 정치의 선진성을”
그들의 대화는 계속 이런 식이다.
“주민을 만나고, 편지를 쓰고, 소신을 실천해봐라”
“편지 쓰는 게 실천인가요?”
“말만 하는 것 보다는 낫지.”
영화는 시종일관 답답하다. 그래서인지 현실과 가장 유사하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정치는 현재를 변화시키지도 못한다. (내가 꼽은 명대사 : “대답엔 용기가 필요해.”)
- 빵과 장미 (2002, 켄 로치)
정치영화 대분류에는 ‘켄 로치’ 영화도 들어가야 한다. 정치를 보는 다른 시각도 필요하지 않나? 켄 로치는 사회적인 이슈를 전면화하는 영화, 이른바 ‘사회파 영화’의 거장으로 ‘좌파 영화의 양심’이라고 불린다. 올해 79세가 된 노장 감독의 여러 영화 사이에서 고민했다. <지미스홀><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랜드 앤 프리덤><하층민><레이닝 스톤> 등이 후보였다. 모두 한 감독의 작품이라니, 이 자체로 놀라운 일이다. 추석이니만큼 가장 대중적인 영화 <빵과 장미>를 택했지만 다른 영화를 봐도 좋겠다. (사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최고다.)
빵과 장미는 ‘임금’과 ‘투표권’을 상징한다. 즉 노동의 권리와 정치적 권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생존권과 평등권이라 해도 좋다. 다 같은 말이다.(다 아는 말이다.)
멕시코 출신의 마야는 국경을 넘어와 미국에서 청소용역 노동자로 산다. 노동권이 보호되지 않는 환경이 예상되지 않나? 우리의 의지로 조금씩 변해가는 세상을 만나고 싶다면, 삶의 주인으로 사는 게 어떤 건지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를 권한다.
마야가 묻는다. “당신은 이 일에 무엇을 걸고 있죠?”
- 남쪽으로 튀어 (2013, 임순례)
추석연휴 가족과 모여 앉아, 또는 혼자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로 이런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 보고 있는 광경을 상상하니 죄책감이 느껴진다. 모처럼의 연휴 아닌가. 하여,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웃기는’ 정치영화 한 편 넣는다. 물론 이 영화는 ‘바른’(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정치관에 입각한 영화는 아니다. 무정부주의에 가깝다. 주인공이 국민연금과 전기요금을 내기 싫어하는 건 사회보장정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무척 불편하다. 일본 소설이 원작인데 영화는 한국 상황에 최적화되어 있다. 고졸 중퇴라 취업을 못한다거나, 사람 사는 집을 사정없이 철거하는 용역, 섬에 케이블 카 놓겠다고 공약하는 국회의원 등등. 상황은 심각하지만, 선거를 놓고도 “뭔 놈의 애국심이 4년마다 돌아온다냐?”는 반응이니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다. 이런 영화를 보고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진정한 고수다.(라고 주장해 본다.)
현실이 마음에 안 든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남쪽으로’ 가거나 여기를 ‘바꾸는 것’. 남쪽으로 간다고 이상향이 기다리고 있다는 보장은 없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사람이 사는 곳이다. 수천 년 역사의 인류가 사회를 운영하는데 가장 괜찮은 방법이라고 합의한 게 민주주의다. 완벽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완벽한 제도도 없다. 특히 민주주의는 ‘비용’이 많이 드는 제도다. 조직화의 비용, 참여의 비용, 갈등의 비용, 협의의 비용 등을 외면하고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비난만 해서는 사회가 바뀔 리가 없다.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나의 노동만큼 변한다. 어차피 우리는 갈 곳도 없다. 여기가 남쪽이다.
*앞으로 가장 정치적인 애니메이션, 링컨이나 JFK같은 정치인물 영화, SF영화로 보는 정치 등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반응에 따라 신이 나서 또 쓸 수도, 영영 안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럼, 즐거운 추석되시길 바랍니다. (작성 : 정치발전소 부설 사회정책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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