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제법 가을냄새가 익어가는 주말이라 그런지 대한문 앞은 나들이 나온 인파들로 제법 붐볐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들을 기다리며 먼저 도착한 일행들을 뒤로 한 채 대한문 앞을 조심스럽게 서성였다. 수문장 교대식을 준비하는 부산스러운 움직임과 소외된 자들의 농성장이 눈앞에 번갈아 가며 들어온다. 한 공간 안에 어색한 공존이다. 우리의 역사는 늘 숨가쁘게 달려온 듯 하다. 그렇게 정리되지 못한 채 달려왔기 때문인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보기에도 어색한 모습을 곳곳에 자아낸다. 이러한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오늘 둘러보기로 한 정동인 것 같기도 하다.
함께 하기로 한 일행들이 모두 모였고, 부산스러운 수문장교대식의 안내방송과 함께 다들 힘차게 발걸음 디뎠다. 성공회 성당 주차장에 모두들 모여 정동은 왜 정동인가?에 대해 첫 해설을 들으며 서울환경연합의 토요역사기행이 시작되었다.
정동은 원래 정릉이 있던 자리라 하여 정동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이 있던 자리였으나 현재의 성북구 정릉동으로 이전되면서 지명만 남은 상태라고 한다. 얼마 전 즐겨보았던 드라마 ‘정도전’이 내 머리에 자연스레 맴돈다. 극 중에 이성계의 내조의 여왕으로 등장했던 신덕왕후 강씨와 이와 갈등을 하는 청년 이방원의 모습을 떠올리며 성큼성큼 걸어가는 일행들을 뒤따라 간다.

영국대사관 앞을 수줍게 지키던 의경과 우리 일행의 어색함을 뒤로 한채, 성공회 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성공회 성당의 고즈넉한 외부전경과 성당 본당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매료된 듯 했다. 절제된 교회양식에만 익숙한 나로서는 신선한 경험이기도 했다. 자원봉사 하시는 노신사 어르신의 유창한 성공회에 대한 설명으로 인해 잠시 일정이 지체되기도 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이 본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던 예비신랑의 긴장되고 분주한 모습이 참으로 부러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시샘 정도인 듯 했다.

그 이후에 배재학당, 정동제일교회, 정동극장, 한성교회, 경교장, 역사박물관 등등 일정은 조금 숨가쁘게 이어졌다. 그만큼 단순한 역사기행으로 담기엔 우리 근현대사는 숨가쁘게 휘몰아치면서 왔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정동을 거닐며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은 서울시내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일상 속의 작은 아름다움과 한편으로 느껴지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이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쳐오면서 역사와 함께 바뀌어온 정동의 모습은 현재 우리를 닮아 있는 것과도 같아 씁쓸하기도 하였다. 다만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체감할 수 없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김구선생님의 해방 후 거처였던 ‘경교장’에서 우리 일행 중 한 학생의 말이 떠오른다. “엄마, 내가 근현대사를 배운 보람이 있네. 다 배운 것들 이잖아.” 나도 모르게 참 부끄러웠고, 고맙기도 한 아이의 말이었다.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살아가면서 다 조망할 수는 없지만, 순간 순간 느끼고 잊지 않고 누군가에게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나 혼자 거창한 감정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상쾌하게 시작하였던 나의 정동역사기행은 뭔가 무겁게 끝을 내고 있었다.
글, 사진: 박수홍(서울환경연합 회원)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