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위원회 공모가 시작된 지난 8월부터의 대장정이 서울시의 일방적인 '행정편의'에
가로막혔다. 서울시인권헌장 이야기다. 서울시가 어제(11월 30일) 밝힌 이유를 살펴보면, 우선 강남북에서 개최된 공청회가 파행으로 끝났고
최종 6차 시민위원회에 '합의' 통과를 권유했으나 표결로 결론지었다는 점, 다음으로 서울시가 생각하는 사회적 합의는 사회적 약속임에도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긴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들었다. 어제 서울시 입장을 발표한 서울시 관계자는 '반대하는 시민이 1명이라도 있다면 합의는 실패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알다시피 이번에 쟁점이 된 사안은 서울시인권헌장 전체가 아니다. 오로지 인권으로서
보호되어야 할 사회적 가치를 나열하는 과정에서 '성적 지향'을 포함할 것인가 아닌가의 여부다. 따라서 서울시가 마치 서울시민 사이에서 인권헌장
자체에 대해 합의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비겁하다. 정확하게는 성적 지향에 따른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호할 것인가 아닌가로 좁혀지는
것이고, 서울시는 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합의가 아니다라고 정한 것이다.
노동당서울시당은 이미 올해 미국 순방 중 '동성 결혼 합법화' 발언과 이를 수습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통해서 박원순 시장의 한계를 확인한 바 있다. 반면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십분 양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이런 갈등이 예상가능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즉, 이미 차별금지법 제정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을 확인한 상황에서 서울시의 인권헌장 제정에 어떤 쟁점이 있을지는 불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번 과정에서 가장 절망스럽고 안타까운 것은, 서울시가, 박원순 시장이, 서울의 혁신행정이 10년도 넘게 진행되어온 우리나라의 퀴어
운동과 활동에 '예견된 상처'를 안겼다는 점이다. 공청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론보다는 '방해'가 의견이 되도록 방치했고, 야만이 이들의 상처를
헤집는 것을 방조했다. 적어도 인권을 표방한 서울시가 인권헌장을 추진해가는 과정은 세심함보다는 어리숙함이, 명확한 정책방향보다는 마지못함이
도드러졌다는 것에 분노가 인다.
그래서 인권헌장을 박원순 시장의 그런 저런 악세사리 정도로 삼고 싶었을 것이라는 질
낮은 의혹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그가 자랑하는 수많은 소통과 경청, 그리고 청책은 반대를 찬성으로 이끄는 합의의 과정이었나. 당장 작년에 논란이
되었던 경전철 논란과 더불어, 어정쩡하게 머물러 있는 뉴타운 재개발 사업을 보라. 그 과정에서 이번 인권헌장 합의과정에서 시민위원회에 요청했던
그와 같은 '사회적 합의'를 서울시 스스로 따른 적이 있는가 말이다.
노동당서울시당은 박원순 시장에게 권한다. 과거 혁신적인 사회활동가로서 서울시장의 직을
수행하고 싶다면, 갈등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하지만 행정가로서 서울시장의 직을 수행하고 싶다면 적어도 자기책임의 범위에서만 공무를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 서울시인권헌장을 둘러싼 갈등의 책임은 서울시이고, 갈등의 원인은 박원순 시장이다. 그러니 구차한 변명이 아니라, 시장이
사과하라. 특히 이 과정에서 또다시 삶을 부정당한 퀴어 당사자와 활동가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이들의 절박함을 알량한 치적으로 삼으러했던 것에, 애초부터 '합의가 가능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 합의라는 폭력을 가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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