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 '당원이 한다'에 선정된 젠트리피케이션 공부모임에서는 '도시권 강연회_정기황'을 진행했습니다. 아래는 참여해 주신 채훈병 위원장님의 후기 입니다.
[노동당서울시당 당원이 한다]
'생산적 정의'의 실현, 도시권
채훈병
- 지난 5월, 일제와 독재를 견뎌 온 서대문형무소 옥바라지 여관 골목이 아파트 재개발을 위해 강제 철거 되었다. 그런데 강제집행을 수수방관한 서울시는 <2025 도시환경정비기본계획>에서 기존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사람과 장소가 아닌 전면 철거 위주의 재개발로 도시의 역사성 및 장소성을 상실하고 획일화된 도시공간"을 양산했다고 진단했다.
- 은평구 응암재개발구역에선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중학교 설립계획이 취소되었다. 그러나 해당지역의 재개발이 끝나면 학생 수가 증가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인근에 중학교가 없어 이미 원거리통학 문제가 심각한 상태였다. 그런데 주무관청인 교육청을 비롯해 은평구청, 시의회 모두 잘못 된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학교부지가 사라진 자리에는 아파트 두 동, 약 150여 채가 추가로 지어진다.
- 30년 가까이 인근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 왔던 ‘아현포차’가 마포구청의 강제철거로 사라졌다. 마포구청은 단 몇 사람의 아파트 주민이 집요하게 제기해 온 ‘도시미관’을 근거로 영세상인들의 생존을 짓밟았다. 이른 아침 군사작전처럼 펼쳐진 행정대집행에는 ‘법’도 ‘공무’도 ‘공무원’도 없었다. 포장마차를 지키려는 이들은 길바닥으로 내동댕이 처졌고 상인들의 생계 수단이었던 집기는 하나도 남김없이 박살이 났다.
제가 살고 있는 곳 근처 자치구들에서 최근 보거나 겪은 일들입니다. 누군가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는 심각한 일들이지만 대다수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이웃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알게 되더라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무심히 지나칩니다. 도시에는 이런 일 못지않게 더 시끄럽고 복잡한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게다가 바쁘고 고단한 도시민의 일상은, (결코 자신들과 무관할 수 없는데도) 자신이 당장 겪지 않을 일에는 관심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런 일들은 순탄하게만 진행되지 않고 ‘약간의 소란’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반대와 저항을 하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이 도시는 어떻게 형성되었고 미래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요. 어떤 이유로 일군(一群)의 세력들은 도시의 이러한 변화에 저항을 하는 것일까요. 왜 행정권력 혹은 국가권력은 이런 정당한 저항을 수용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폭력을 동원해 진압하려고 할까요.
도시에 가득한 빌딩들과 아파트 단지가 땅 속에서 저절로 솟아오른 것이 아니라면 이 거대한 구조물들의 그늘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들과 그들이 속한 공동체를 송두리째 뿌리 뽑거나 파괴해 온 과정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도시라는 공간에서는 일상다반사의 풍경일 것입니다.
자본, 위기, 불평등, 노동, 계급, 지역 등 습관적으로 이야기해 온 개념들이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 체제가 우리 삶의 대부분을 의탁하는 도시라는 시공간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오늘날의 경제위기는 도시의 위기"라고 주장한 하비(Harvey)가 말했던 것처럼, '거대한 변화(Big Change)'를 이루기 위한 실천 가능한 '작은 행동(Small Action)'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고민이 들었습니다.
뉴타운지역, 강제집행 현장, 서울시당 지역정책모임 '구청이들썩들썩' 등을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마치 수영 초급반을 건너뛴 채 중급반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체계적인 학습이 필요하던 차에 '도시권 강연회'를 만났습니다. 한 번의 강연으로 그동안의 궁금증과 고민이 해소 될 리 없겠지만 앞으로 가르침을 청할 이들을 확인할 수 있어서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웠습니다. 강연자로 나선 정기황 선생을, 역시 도시를 주제로 토론한 '적록포럼'에 이어 두 번째로 뵙게 된 자리였습니다.
강연 내용을 참고해서 자료를 찾아보며, 앞서 언급한 사례와 관련지어 도시와 도시권의 문제를 거칠게 짜깁기 해 보았습니다.
▲ 집중도 높았던 강연,
<도시권 문제>
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언뜻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모두 같은 원인에서 비롯되었다. 바로 부동산자본과 금융자본이 작동하는 무대이며 수단으로서의 도시를 지탱하는 ‘집값’ 때문이다. 과잉자본을 흡수하기 위한 도시공간의 재편과 재구축이 진행되고 행정은 규제완화라는 수단으로 거들고 있다.
도시는 유동성의 잉여를 흡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엄청난 투자를 흡수한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시화'다. 도시공간은 공공성을 위한 개발이 진행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이익 즉, 미래의 개발을 전제로 한 지대 수취를 노리는 투기의 공간으로 점령되었다. 결국 자본은 국가권력의 조력을 통해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도시’가 아니라 ‘투자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온 셈이다.
이런 문제는 단지 공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도시 재개발의 촉진을 위해 가계에 대한 부동산 대출의 확대 등 금융정책 및 운영은 모든 경제주체들이 부채위기 속에서 허덕이도록 만들었다. 도시에서의 잉여가치의 창출과 재투자 과정은 영세 가옥주, 임차상인, 세입자 등 도시 서민들에게 사회적 위기를 전가하고 있다.
자본권력 보다 국가권력이 확실한 우위에 있던, 국가의 강제동원과 국가주도 고도성장의 시대에는 여의도 5.16광장, 국회의사당, 법원과 검찰청사 등 국가권력을 상징하는 구조물들이 도시 곳곳에서 위용을 자랑했다. 그러나 현재 도시 건조물의 주인공은 국가권력을 압도한 자본권력을 상징하듯 매끈하고 화려한 첨단 고층 건축물들이다.
잉여물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생산되든 소수의 지배계급에 의해 전유되고 관리된다. 도시는 잉여물의 생산계급과 이를 전유하는 계급 간의 갈등이 끊임없이 전개되는 계급투쟁의 장이기도 했다. 즉 도시는 잉여생산물의 사회공간적 집적지였으며 도시화 과정은 언제나 계급적 역학관계 또는 계급투쟁 속에서 진행되어 왔다.
잉여물의 집적지이자 저장소로서의 도시, 그리고 인간 생존의 조건이며 동시에 계급투쟁의 장으로서 도시의 역할은 고대사회와 봉건사회를 거쳐 자본주의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도시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기능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동적이고 강력하다. 르페브르(Lefebvre)는 도시공간이 자본주의 역동성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며, 그 역동성이 전개되는 장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그 자신을 지속적으로 존립시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생산하고 재생산해야 할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도시화율 75%의 시대이다. 그래서 21세기는 도시의 시대라고 한다. 국민이든, 주민이든, 노동자든, 생활인이든 어떤 정체성을 가져다 붙여도 어느 누구도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비는 오늘날 경제위기란 ‘도시의 위기’라고 주장한다. 도시 위기는 도시인들의 생활 속에서 사회공간적 위기를 초래한다. 도시인들이 직면한 사회공간적 위기양상들은 소득 감소, 부채 증가, 고용 불안,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 육아, 교육, 의료, 고령화사회에 대비하는 복지 부족 등과 같이 물질적 결핍뿐 아니라, 소외와 배제, 적대감, 정체성의 혼란, 이로 인한 정신적 병리 현상들이 도시 공간에 만연해 있다.
당면한 도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원인이 되는 자본축적 과정과 이를 뒷받침했던 국가 정책의 한계에 관한 정치경제학적 연구, 다른 한편으로 도시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인간적 인문학적 성찰이 요구된다.
도시 위기가 도시 공간의 형성과 재편을 통해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재투자하기 위한 자본의 순환과정에서 내재된 모순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달리 말해 도시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재흡수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 수단이라면 이 잉여가치는 누가 통제하고 관리해야 하는가?
하비는, “국가 이익과 기업 이익을 통합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시스템은 화폐 권력(금융자본)과 국가기구를 동원하여 도시화 과정에서 창출된 ‘잉여가치의 관리권’을 점차 사적 또는 준사적 이익집단이 장악하도록 했다. 그러나 도시의 잉여는 도시인들이 생산한 공유재로, 도시의 공유재를 사용할 권리는 공유재를 생산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르페브르가 처음 사용하고 하비가 계승하여 강력히 주창한 ‘도시권’은 최근 도시 공유재의 생산과 이용의 민주적 관리에 대한 실천적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도시권은 도시의 공적 자원에 대한 접근 권리 또는 자원의 분배적 정의에 대한 단순한 요구와 실현을 넘어선다. 도시권은 자신이 창출한 도시로부터 소외된 시민들이 자신의 희망에 따라 도시를 재창출하려는 ‘생산적 정의’의 실현을 담고 있다.
(상당부분 대구대 최병두 교수님의 자료를 참고하였습니다.)
▲ 흥행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고.. 도시권에 대한 관심도를 확인 해 볼 수 있었습니다.
------ 마무리,
강연 중에 낯설지 않은 사진 한 장을 보게 됩니다. 삼일고가와 삼일빌딩이 나온 사진입니다. 개발독재 막바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제가 ‘조국의 발전’에 자부심을 느끼며 ‘애국’을 확인했던 사진입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병영국가는 도시 구석구석을 도배한 ‘때려잡자 김일성’식의 표어, 날마다 엄숙한 국기 하강식, 광장을 행진 하는 늠름한 국군의 모습 등 온갖 이미지와 기표를 활용하여 철없는 아이를 충성스러운 ‘애국소년’으로 훈육해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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