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행 정리>
조민재(87/사학)
오전 9시 10분 당산역 출발, 양재역을 거쳐 천안휴게소에서 주상형을 픽업, 청주터미널에서 찬교형, 양운누님과 합류 후, 점심을 했습니다. 명물 항아리짬봉에 딸려나오는 고르곤졸라 피자, 탕수육까지 폭풍 흡입... 이때부터 배부르면 저녁을 맛있게 못 먹는다고 정태형 지레 걱정...^^ 점심 후 각자 자기소개를 하며 설레고 반가운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중학생처럼 앳되보였던 막내 채원이는 알고 보니 몇 달 후 일리노이주립대 입학 예정인 재원이었네요. 똑똑하고 야무지고 사랑스러운 막내 덕에 제가 겨우 막내 면했습니다. ㅎㅎ
구례터미널에서 정태형의 주선으로 귀하디 귀하신 11kg 농어님을 접수, 극진히 모시고 화개장터에서 장을 본 후 의신마을로 들어서니 어느덧 오후 4시가 넘었습니다. 정태형의 지리산 절친 친구분으로부터 격한 환대를 받으며 부부가 운영하시는 펜션에 대충 짐을 풀고 지리산역사관으로 서둘러 갔습니다. 오후 6시가 아니라 5시까지라 그리 오래 보지는 못했지만, 지리산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빨치산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죠. 빨치산과 겉과 속이 가장 흡사하신(?) 찬교형님의 옛이야기기 곁들어져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펜션으로 돌아오니 주인 부부가 열심히 상을 차리시는데, 그야말로 온갖가지 나물에 농어회, 서더리탕이 술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화개 골짜기 쪽으로 겹겹이 펼쳐진 산자락에 운무가 쌓이는데, 선머슴이 보더라도 이 자리가 언필칭, 명당임을 알겠더군요. 착착 감기는 동동주가 한사발 들어갈 때마다 곁에 앉은 사람과 아래쪽 산자락과 두툼한 농어회와 알싸라한 나물이 혼연일체되어 적벽부 표현대로 그야말로 배반이 낭자해져 가는데, 중현형이 가져오신 금싸라기같은 수정방이 간간이 알콜 도수를 끌어올려 마침내 필름이 끊긴듯.... 뭔 실수는 없었는지, 그만 가고 말았습니다.^^
두어 시간이나 잤을까... 깨질듯한 머리로 문득 눈을 뜨니 새벽 3시 반.. 이거 우리가 계속 내리는 비에 등산 안하기로 하고 술마신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으며, 어쨌든 책임감에 형님들을 깨우니 누구 하나 뭐라 안하고 다들 강시처럼 일어나시더군요... 헉.. 진짜 벽소령 가는구나.. 좀 아찔했죠. 부산하게 짐을 챙기고 주인장의 배려로 1톤 소형트럭에 걸터앉아 삼정마을까지 3km 정도 편안히 갔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
새벽 5시경부터 벽소령을 향해 걸었습니다. 약간 경사진, 정식 길은 아니지만 좀 더 효율적인 코스를 탔습니다. 1시간쯤 숨고를 틈도 없이 치고 올라가니, 이제 제대로된 길이 나오기, 여기서부터 약 1시간은 아주 평탄한 길이 이어졌습니다. 다시 1시간 가량 급경사를 올라 마침내 모두 무사히 벽소령에 안착, 이때까지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아 버너, 코펠을 꺼내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을 끓여먹었죠. 이제 날은 훤히 밝아 8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이제야 술이 깨고 정신이 들더군요. 세상에 이런 음주 산행은 처음인듯 싶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9시 30분... 선두그룹에 정예멤버인 종기, 제학, 중현, 정미 선배님들이 먼저 세석을 향해 치고 나가셨고, 그 외 분들과 저는 느긋하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간간이 비가 내리더니 칠선봉과 영신봉을 향해 갈때는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습니다. 어느 때부터 찬교형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걷다보니 지루한 마음도 사라졌고, 또 그 와중에 운무에 쌓인 장엄한 지리산을 바라다보며 형님의 수제 담배로 화답을 해주었는데, 정말 맛이 끝내줬습니다.^^
찬교형님과 세석대피소에 도착할 즈음엔 비가 퍼붓듯이 내려 뒤에 오는 팀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때는 12시 30분... 선두그룹은 이미 12시경에 이곳을 출발,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중산리로 마음을 굳힌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 비 속에 천왕봉을 올라간들 딱히 볼 전망도 없어 그닥 내키지 않았습니다. 하여 찬교형을 비롯한 뒤쳐져 오는 일행은 여기서 거림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하였는데, 뒤이어 도착한 주상형은 선두그룹을 따라가겠다며 점심도 안 들고 바로 뛰어가시더군요.. 헐...^^
주상형을 포함한 선두그룹 5인은 마침내 천왕봉을 터치하고 중산리로 6시경 하산 완료,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편, 우리는 세석에 도착하시는 분들 순서대로 정태형이 미리 준비해주신 전투식량을 느긋하게 먹었습니다. 식사 끝난 분들은 나름대로 서둘러 거림계곡으로 내려가시고, 마지막에 저와 정우형이 정인, 애경, 양운 누님들과 함께 하산하였습니다. 때는 이미 오후 2시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정우형의 침 한방으로 기운을 차린 양운누님은 정인누님과 어느덧 시야에서 사라지고, 이제 정우형, 애경누님과 후발대가 되었습니다. 애경누님은 아마도 이렇게 긴 산행을 처음 해보신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힘을 다해 여기까지 걸어오셨고, 또 물이 불어나서 위험천만한 6km 계곡길을 불굴의 의지로 관철하며 거의 완주하셨습니다.
거림계곡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모두 도착하니 어느덧 시간은 7시에 가까워졌습니다. 서둘러 중산 계곡으로 가서 다섯 분을 픽업한 후 서울로 향했습니다. 종기 선배님이야 워낙 건각임을 알고 있었지만, 중현형 제학형 주상형 세 분은 평소 산행으로 단련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완주를 하셨습니다. 특히 그동안 우리 산우회의 모범 출석생(이걸 메이저리그 팜시템 개념으로 얘기하자면, 민동산우회가 키운 우리 누님? ㅎㅎ) 정미 누님이 어느덧 이런 철의 여인으로 성장하셨을 줄이야. ^^ 하야튼 이로써 중간에 쉬긴 했지만, 총 15시간에 걸친 지리산 우중 산행이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7시 30분경 산청 중산리를 출발, 9시가 넘어 함양휴게소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11시경에 대전에서 양운누님이 내리셨고, 이어서 찬교형, 주상형이 각각 죽암, 천안휴게소에서 내리셨습니다. 서울로 쏜살같이 달려 죽전정거장에서 분당팀인 고진, 희균 형님들이 자정 무렵 내리시고, 양재에서 정미누님, 현아선배님, 채원이와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출발점인 당산역에 오니 새벽 1시가 되었습니다.
모두들 한결같은 마음으로 즐겁고 행복하게 다녀온 지리산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멀리서 따로 승용차로 합류해주신 정우형님, 작년 화순 이후 처음이라 반가웠고, 하산길에 도움말씀 많이 받으며 지루하지 않게 내려왔습니다. 김지연 선생님과의 오랜 인연으로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던 고진형님 뵙게 되어 이번 지리산행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항상 좋은 글 올려주시는 이제학 선배님도 곁에 앉은 덕분에 비로소 제대로 얘기 나누며 막걸리 같이 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원배형님께 말로만 듣던 주상형님, 대단하신 체력에 정말 놀랐습니다. 원배형과 꼭 놀러갈께요..^^ 찬교형님의 정겹고 소탈한 말씀은 학번과 나이를 잊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으신 듯해요. 정인, 애경, 소자, 양운누님들 성북동과 북촌에 이어 지리산까지 함께 하게 되어 행복했습니다. 제가 집에서도 막내이고 57년, 62년생 누이들 틈에서 자란 탓에 가끔 격의 없이 오버하기도 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막차도 끊겨 막막했는데, 중현형께서 다소 길을 우회하셔서 김포 집까지 편히 택시로 데려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의 이번 지리산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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