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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호주에 가다] 두번째 이야기 - 멜버른의 멍멍이들

수, 2019/08/21- 23:12 admin 에 의해 제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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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는 꽤 넓은 운동장만한 크기의 공원이 있다. 완만한 언덕과 운동할 수 있는 잔디밭이 있는데 볕이 좋은날이면 휘적휘적 걷기만 해도 소풍을 나온 것 같다. 이 멋진 공원의 방문객들 중 3분의 1은 주인과 함께 나온 반려견들이다. 이곳에서는 대다수의 개들이 공원 안에서 목줄을 풀고 돌아다닌다. 대부분은 주인과 함께 공이나 원반을 가지고 놀기도 하지만 목줄이 풀리자마자 잔디밭을 내달리는 녀석들도 있다. 공놀이를 하다가 공원 옆으로 굽어 흐르는 강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즐기다 나오기도 한다. 개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공원에 가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자유로워 보이는 개들과 삶의 여유를 주는 녹지는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온 듯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개들은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몇 달 전 모르는 사람에게 공을 던져달라고 물고 오는 취미가 있는 작은 슈나우져 이후에는 개들이 먼저 다가와서 큰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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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포메






길에서도 개들은 주인바라기다. 멜번의 인도는 그리 넓은 편이 아닌데도 목줄을 하고 주인과 걸어가며 그다지 주변 행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가끔은 주인이 상점에 들어갈 때 가게 앞에 목줄을 메어두지 않고 개를 앉혀두어도 그냥 그 자리에서 상점만 바라보며 주인이 나오길 기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나 멜버른에서 6개월 정도 지내는 동안 네 다섯 번 본 적이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그다지 이런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사회화 훈련이 잘 된 개들의 모습이 표준인 것처럼 인도 위 야외 테이블에 개들을 묶어둘 수 있는 기둥이나 개들을 위한 물그릇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렇게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 내게는 전반적으로 반려견과 함께하는데 익숙한 사회라는 인식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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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앞 리트리버






얼마 전 호주의 수도 캔버라가 있는 수도특별자치구 의회가 동물을 감정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동물 복지를 확장하는 법률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가 발표되었다. 개정안에 따르면 밀폐된 공간에 24시간 이상 갇힌 개를 2시간 이상 산책시키지 않으면 3천 호주 달러(330만원)의 벌금이 부과되며, 자동차 안에 갇힌 동물을 구하기 위해 차를 부수는 것도 법적으로 허용이 된다고 한다. 물론 한국에도 동물을 죽이거나 학대했을 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동물보호법이 있지만, 실제 처벌 사례를 보면 강도가 그다지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20178월 자신이 기르던 생후 3개월 정도의 강아지 다리를 손으로 잡아당기거나 다리 한 쪽을 들고 심하게 흔들고, 손으로 때리고, 이로 깨무는 등 학대하여 강아지의 엉덩이뼈가 깨져 보행하지 못하게 된 사건에 대하여 벌금 400만원이 부과된 판례가 있다. 이마저도 가해자가 저지른 공무집행방해죄와 병합된 사건의 판결이었다. (춘천지방법원 2017.12.13. 선고 2017고단548, 933(병합)판결)





하지만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반려견 친화적인 사회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어학원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 쇼야는 어릴적 개에 물린 적이 있어 개를 무서워한다며 인도에서 개를 마주치게 되면 부담스럽고, 무섭다고 말했다. 그리고 멜번에서 시티투어 가이드를 하는 한 친구는 가이드 중 손님들이 큰 개가 있는 길을 지나가는 것을 무서워해서 자신도 무서움에도 불구하고 몸으로 가려 손님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한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허가된 공원이 아닌 이상 모든 개들은 목줄 착용이 의무기에 모두 묶여있거나 주인의 손에 목줄이 쥐어져 있지만 마치 일반 보행자처럼 길을 다니기에 바로 옆에서 지나가는 큰 개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호주에서는 반려견들의 사회화 교육 과정이 일반화 되어있기에 개들의 태도에 대한 보편적 신뢰가 있는 듯 하다. 보통 호주의 개들은 강아지 때 퍼피 클래스에서 공격 행위 순화와 기본적 대소변을 가리는 것을 훈련한다고 한다. 또한 생후 6개월 이후에는 복종 훈련(Obedience Class)에 참가하는데 교육 과정에서는 주인이 개를 데리고 함께 교육에 참여한다. 훈련은 보통 약 6-8주 동안 주 3~4회 정도 공원에서 진행된다. 주인 말을 듣고 기다리는 훈련, 다른 개들과 어울리는 사회성 훈련과 사람들에게 달려들거나 물지 않는 훈련을 한다. 훈련이 된 개는 꼬리를 치며 반가워하지만 먼저 달려들지 않고 사람이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게 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호주에서 마주친 개들이 대부분 이렇게 의젓하고, 젠틀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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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목줄없는개들






한 번은 인터뷰를 위해 몇 명의 친구들과 개 훈련사를 지망하는 일본인 마이그리고 그녀의 반려견 다이를 만났다. ‘다이는 다리에 장애가 있어 보호소에 머물던 비글이었으나 지금은 마이의 반려견이 되어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원래의 계획은 공원에서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긴장감이 도는 시간을 보냈다. ‘다이가 퍼피 클래스나 복종 훈련에 참가한 이력이 없어 다른 개들을 보면 심하게 흥분하여 우렁차게 짖는 것이었다. 목줄을 풀어도 되는 공원이기에 공원에 놀러온 다른 모든 개들은 목줄이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데 다이의 짖는 소리가 자극이 되어 사고가 날까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다른 개들은 주인이 이름을 부르거나 ‘Come on~’ 하고 부르는 소리에 자제하고 주인을 따라갔다. ‘마이에게 일본에서와 호주에서 다이의 태도가 달랐는지 질문을 하니 일본에서는 다른개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어 다른 개를 보고 짖거나 하는 격한 반응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근래에 마이다이는 복종 훈련에 참가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무려 유학파 개의 앞으로가 기대된다.



호주의 반려견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준비하다가 문득 대학 때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사회의 현주소를 보려면 그 사회가 약자와 소수자를 어떻게 대우하는지 살펴보라는 내용이었는데 이번 주제와 관련하여 동물권에 대한 생각과 더불어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개 물림 사고나 길고양이를 돌봐주는 캣맘에 대한 이슈가 계속 되고 있는데, 단지 사람들 사이의 합의로만 종결될 일이 아니라 법이나 규제, 공공지원이나 도시 구성과 계획 전반에 관련되어 점진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는 부분으로 보인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모두 만족스러운 사회를 넘어서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나가는 방향의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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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호주에 가다>는 필자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바라본 일상에서의 환경 이야기를 담습니다. 



<필자 소개>



이재욱 전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생태지평연구소 전 연구원이자 전 프리랜서 기타 강사.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무턱대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온 33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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