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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국립공원 (글/부산대 홍석환 교수)

화, 2019/01/22- 10:06 익명 (미확인) 에 의해 제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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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국립공원

글/ 부산대 홍석환 교수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은퇴했다면 많건 적건 누군가는 오랫동안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이럴 때 그가 좋아했던 공간이 있고, 비록 같은 시간은 아니지만 그 공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어떨까? 비슷한 관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리울 때 찾는 봉하마을은 수많은 지지자들에게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가슴 한편에 쌓인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달래고자 하는 공간이 된다. 비록 지금은 그가 없지만 문득 그리울 때 찾아가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잠시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휴가차 방문했던, 어릴 적 추억이 있던 거제의 한 섬도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선사했었던 것은 틀림없다.

대통령으로서 퇴임 후에도 자신을 기억해줄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장소를 본인 재임시절 국가 보호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면 어떨까? 대통령이 퇴임하면 세금을 들여 기념관이나 기념사업을 하지만 대부분 새로 짓는 건축물에 과거의 시간이 고정되어버린 유물 같은 소품이나 사진, 기록물이 전시된 공간을 꾸미는데, 이 공간은 대통령과 함께 같은 장소에서 마음을 공유한다는 감정적 연결고리로는 그다지 역할을 하지 않는다. 아쉽게도 전 대통령이 생각날 때 그리움을 달랠 수 있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대통령이라면 자신이 좋아하고 추억이 있는 산을, 바다를 좋아하는, 강을 좋아하는 대통령이라면 역시 추억할 수 있는 장소를 재임기간 중 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대통령이 사랑한 장소가 되는 것이다. 그 어떤 마케팅보다 훌륭한 보전마케팅이자 여가휴양마케팅이 아닐까? 대통령이 어린 시절 소풍을 가서 자연과 함께 뛰어놀던 곳, 방황하던 청년시절 꿈을 갖게 만든 산, 대통령이 되기 위해 마음을 다잡은 바다 등등 말이다. 미국에 이런 생각을 실현한 법이 있는데, 1906년 루스벨트대통령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역사문화 유산법(Antiquities Act)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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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자연보호 역사의 핵심 인물인 존 뮤어와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국가공원청
(National Park Service)에서 관리하고 있는 국가공원시스템은 국가공원(National Park; 국립공원)을 포함하여 국가기념물(National Monument), 국가해안(National Seashore), 국가하천(National River), 국가휴양지(National Recreation Area) 등 다양하다. 이 중 국가기념물의 지정권한을 대통령에 부여한 것이다. 당시 보호지역 지정에 대한 논란이 많았던 그랜드캐년 또한 이 법에 의해 국가기념물로 지정되어 현재의 국가공원(국립공원)이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에 의해 150개소 이상의 국가기념물이 지정되었으며, 오바마대통령은 이 법을 활용하여 무려 26개소를 지정하여 가장 많은 국가보호지역을 새로 만든 대통령이 되었다. 물론 개발을 지향하는 현재의 트럼프대통령을 포함하여 몇몇 대통령은 이 법을 활용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대통령은 이 법을 활용하여 보호지역 확대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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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이 지정한 국가 기념물
(자료: National Parks Conservation Association; Does not count monuments expanded from previous designations)

현재 우리나라의 보호지역 면적은 상대적으로 매우 좁으며 이 지역들 또한 개발압력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리고 보호지역의 확대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보호지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만약 대통령이 보호지역을 지정한다면 보호지역에 대한 부정적 인식뿐 아니라 지지부진한 보호지역 확대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한 은퇴 후 그를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가 될 것이다. 시간이 멈춘 박물관의 기념물이 아니라 비록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장소 안에서 같은 공기를 마실 수 있고 그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그리움의 장소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곳에 가서 내가 추억하는 대통령의 존재를 상상하게 되는 것, 이 때 보호지역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보호해야 하는 공간이 아닌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해야 할 장소가 되는 것이다.

2010년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결의된 아이치목표의 첫 번째 목표가 생물다양성의 가치와 지속가능한 보전을 위한 인식증진이다. 일반인들에까지 보호지역과 생물다양성에 대한 가치가 개발에 의한 가치보다 훨씬 높음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이 목표의 달성기한인 2020년이 이제 코앞에 와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공항 건설을 위해 국립공원 해제를 요구하는 수준에 있다. 대통령에 쥐어주는 작은 권한은 보호지역에 대한 인식증진을 따뜻한 감성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수단이 되지 않을까 한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 공익을 위해, 그리고 대통령이었다는 역사에 기록되는 분을 위해 대통령의 권한 하나쯤은 추가로 허용해도 되지 않을까? 대통령이 은퇴 후에 지지자들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함께 산책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에서 가끔 가지는 특권을 주는 것은 모든 국민에게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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