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만연한 산업재해, 더 이상 남 일이라 외면할 수 없는 현실”
안녕하세요. 7월2일부터 4주간 이주노동희망센터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나영훈입니다. 인턴으로서 지난주 의미 있는 2개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후원회원님들에게 행사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2018년 7월 17일, 서울 중구의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산업재해 피해자 증언대회 및 노동안전보건과제 대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그 중 이주노동희망센터는 이주 노동자인 알사의 사례에 주목했습니다.
방글라데시 노동자인 알사는 플라스틱 공장에서 포장 작업을 하던 중 기계 오작동으로 왼손이 끼어 손 전체가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장시간 저임금’, ‘12시간 야간노동 근무’의 열악한 환경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사측의 태도였습니다. 사측에서 작성한 산재보험 청구서에는 알사가 졸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허위 내용과 위조된 알사의 사인이 날인되어 있었습니다. 알사는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기계에 별다른 안전장치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측은 사고의 잘못을 전적으로 알사의 책임으로 내몰았습니다. 산재 신청서에 ‘졸음으로 인해’라고 꾸며진 내용은 평소 회사가 이주민 노동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우해 왔는지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6월에 발생한 사고, 알사는 지금도 재수술을 거치며 회복 단계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 또한 더 나은 삶을 위해 혹은 부양하는 가족을 위해 미국, 호주, 혹은 유럽 등지의 낯선 땅으로 떠나곤 합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보면 우리나라에 이주해와 있는 노동자들의 처지가 그들과 같은데 왜 우리는 편견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낮잡아 보고 무시하는 걸까요?
이주노동자 유입역사 30여년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산재발생률은 1.16%로 국내노동자 산재발생률 0.18%의 6배에 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길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런 부당함과 멸시를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단결할 권리, 소리를 낼 권리가 충분히 보장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안전한 작업 환경, 정당한 노동 복지의 권리를 주창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18년 7월 20일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인종차별 보고대회]를 다녀왔습니다. 본 토론회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하는 시민사회보고서의 준비 과정입니다. 한국사회 인종차별을 개선하는데 일조할 수 있도록,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정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토론회는 한국사회와 인종차별의 역사와 배경을 알아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만연한 ‘백인 우월주의’ 그리고 ‘타인종에 대한 편견과 멸시’의 시작은 개항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나라는 제국주의로 세계를 호령했던 서구 문명에 굴복하면서 자연스레 백인들의 인종 서열 의식을 답습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사회 진화론’으로 구체화되었고, 당시 우리나라의 엘리트 지식인들은 이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적자생존의 논리는 곧 ‘친일파’들의 논리가 되어 사고를 이어갔고, 해방 후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속에서 우리는 변함없이 마치 백인들의 눈으로 인간을 분류하게 되었습니다. 백인과 비슷한 사고를 거쳐 느끼고 행동하며 백인으로서의 대우를 선망하는 ‘유사 백인 의식’은 무의식적으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사고 체계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는 인종차별 강화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을까요?
먼저 이주아동이 처한 교육 현실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주아동이라고 함은 부 또는 모가 이주민이거나 이주민 친인척을 통해 한국에 입국한 아동으로 정의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이들의 교육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주아동의 공교육 전입학에는 여전히 두터운 장벽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학교장이 전입학을 거절할 경우에 이를 거부하고 전입학을 강제할 수 있는 조항이 따로 없기 때문에 사실상 여러 이유를 들어 이주아동을 거부하고 있는 학교들이 많습니다. 이주아동의 경우 가계 형편이 그리 녹록치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급식비라든지 학비와 같은 각종 교육지원이 교육부 지침 상으로 보장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어업 및 농업 현장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의 빈자리를 대체하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또한 큰 문제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고용단계에서부터 착취와 차별을 마주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낮은 임금과 장시간의 노동’입니다. 어업의 경우 관련법인 <선원법>만 하더라도 한국인 선원들의 최저임금만 규정하고, 이주 선원들의 임금은 노사합의로 정하도록 다시 위임된 상태입니다. 농업노동자들도 근로기준법 제63조에 의거 노동시간 및 휴게, 휴일에 대한 적용에서 제외되어 있으므로 열악한 근무 환경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근로계약 위반도 허다합니다. 1일 근무시간 및 휴게시간, 월 근무시간을 작성하였다고 하더라도 실제는 이와 다르게 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례로 월 226시간 정도의 근무를 계약한 한 노동자는 실제로는 280~300시간의 노동을 강요받으며, 임금은 226시간에 해당하는 분만큼만 지급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에 묶여 사업장 변경을 허락받지 않고서는 사업장을 이탈할 수 없습니다. 이들이 계약서 이행 위반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러 사업장을 잠시 이탈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적극 이용한 고용주의 행동은 차별적 착취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요즘 뉴스와 인터넷 게시판을 들썩이게 한 이슈는 제주 예멘 난민 문제입니다. 지난 5월, 약 500여명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입국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인종과 종교적 성향에 대한 무분별한 편견이 이미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조치는 편견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갑자기 불어난 예멘 난민 신청자들에 황급히 이들의 출도를 제한하고 예멘을 무비자 불허국에 추가해버린 것입니다. 법무부의 이러한 조치로 인해 시민들 사이에서는 난민들이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이 더욱 강해지게 되었습니다.
260여명이 사전 참가신청을 했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아래 진행된 인종차별 보고대회는 그 열기만큼이나 활발한 토론과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평소에 이렇다 할 인종차별 문제의식이라든지 관련 경험이 없던 저로서는 낯선 풍경이었지만 발제자와 토론자들, 그리고 함께 청중의 자리에 앉아있는 여러 사람들의 진중하고 엄숙한 표정에 한국에서의 인종차별이라는 주제와 다양한 관련 사례들이 더욱 큰 무게감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한국에 만연한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비로소 생겨나고, 무엇이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해결방안인지 고민하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날 변호사회관에 모인 수많은 법조계 단체들, 인권운동 단체들과 이주민 연대들은 하나 되어 인종차별과 싸웠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같은 법 제정을 통해 보다 확고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왔고, 매스미디어나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나타나는 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무의식적으로, 무분별하게 수용해서는 안되며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과 의견을 정립할 줄 알아야한다는 계몽적인 외침도 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주민들이나 난민들이 국민들의 혐오를 사고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말입니다. 그들의 외모, 종교, 문화, 언어가 단순히 우리와 다르다는 이질감에서 발생한 혐오가 아니라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찾아본 것이 범죄율 통계였습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늘어가는 이주민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 범죄에 대한 공포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통계청에 따르면 2014~2016년 이주민 수는 계속해서 증가해 왔으나 오히려 총 범죄 건수는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그 마저도 경찰청에 따르면 범죄율이 1.7%로 내국인 범죄율 3.95%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상식적으로도 그들은 범죄를 일으키는 등의 일로 부정적인 관심이 조명되면 곧바로 추방당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몸을 사리며 별 탈 없이 지내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해서 그들을 혐오하는 것일까요? ‘유사 백인 의식’이 발현하여 이유 없는 편견과 멸시가 작용한 것은 아닐까요?
오히려 우리 사회와 경제 현황을 보았을 때 이주 노동자들과 난민을 반겨야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 4.5%에 이르는 높은 실업률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20대는 대부분이 대학교 학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하고 정년이 보장되며, 급여가 많고 복지 수준이 높은 일자리를 얻고자 경쟁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농업, 어업, 제조업 분야의 많은 일자리들은 일손이 부족해 제대로 생산 설비를 가동하기 어렵고, 명맥을 이어가기 힘든 상황에 있습니다. 이러한 산업 분야에서 많은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것이 이주 노동자들과 난민들입니다. 그들이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와 경제 발전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의 공로를 외면한 채 편견에 가로막혀 그들의 본 모습을 바라보려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이주민들과 난민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편견이 아니라면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차별하게 만들었는가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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