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주인공은
돈이 아니올시다
글. 장성익 환경저술가
녹색 잡지 <환경과생명>, <녹색평론> 등의 편집주간을 지냈다. 지금은 독립적인 전업 저술가로 일한다. 환경 분야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로 책 집필, 출판 기획, 강연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평화와 번영을 심다?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의 극적인 만남은 크나큰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다. 지긋지긋한 핵과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웠던 이곳 한반도에도 이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평화의 시대가 오는 걸까. 물론 아직은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비롯해 앞으로 넘어야 할 고비가 만만찮을 것이다. 평화가 깨져야 이득을 챙기는 나라 안팎 여러 수구 반동 세력의 저항도 물리쳐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담대한 용기와 비상한 지혜, 그리고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는 결연한 각오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된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던져야 할 물음이 있다. ‘우리가 꿈꾸는 평화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가 그것이다. 4월 2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소떼길 옆에 기념식수를 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생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나무 앞 표지석엔 이런 문구가 새겨졌다. ‘평화와 번영을 심다.’ 여기서 번영이란 뭘까? 당신은 혹시 경제적 번영, 즉 물질의 번영부터 떠올리지는 않는가? 질문은 이어진다. 그래서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말은 곧 ‘평화를 통해 물질적 번영을 이루자’는 뜻은 아닐까?
남북 정상회담 이후 펼쳐진 우리 사회의 풍경을 보라. 정부, 언론, 학계 등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집중한 것은 비핵화, 종전 선언, 평화체제 같은 것뿐만이 아니었다. 경제에 관한 이야기도 홍수처럼 쏟아졌다. 이를테면 파주를 비롯해 접경지역 땅값이 벌써부터 들썩거리고, 남북 경협이 기대되는 북한 관련 업종 주가가 가파른 상승세란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북한은 ‘황금의 땅’이다. 북한에 매장된 주요 광물자원의 잠재가치가 4,170조~7,5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단다. 남한은 광물자원 수입의존도가 88%가 넘는 세계 5위의 광물자원 수입대국이다. 이런 남한 땅에 남아 있는 광물자원의 무려 15배에 이르는 양이 북한 땅에 묻혀 있다는 것이다. 싼값에 써먹을 수 있는 노동력도 널렸다. 언어 장벽도 없으니 일을 시키기에 얼마나 편한가. 이런 흐름을 타고 긴 침체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한 경제에 북한이 새로운 성장의 돌파구가 될 거라는 둥, 남북한 합쳐서 인구 8천만의 거대 시장이 탄생하고 동북아 경제권이 획기적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둥 갖가지 ‘장밋빛 전망’이 넘쳐난다.
이런 것이 우리가 가야 할 평화의 길일까? 지난 박근혜 정부도 ‘통일 대박론’을 내세웠다. 지금과는 달리 아무런 실체도 없는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건 그렇다면 한반도가 평화와 통일로 가는 도정에서 가장 중시하는 게 경제적 가치, 곧 돈벌이라는 점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한통속이란 말인가?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소떼길 옆에 기념식수를 했다. ⓒ청와대
더 높고 깊은 평화를 위하여
분명한 것은 이런 식의 흐름이 비판적 성찰 없이 무조건적인 대세로 굳어진다면 그것이 낳을 결과는 파괴적이고 폭력적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란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탐욕과 이기심의 시스템이다. ‘천민자본주의’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남한 자본주의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이런 터에,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이에 힘입은 남북 경협 활성화가 북한을 남한 자본주의의 내부 식민지로 전락시키는 과정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북한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헤매는 남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사냥터’이자 ‘먹잇감’인가? 만약에 ‘한반도 신경제 지도’의 실제 양상이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풍부한 자원을 손쉽게 착취하고 새로운 소비 시장을 창출하며 남한의 천박한 개발 바람이 북한의 산하를 마구 망가뜨리는 식으로 그려진다면, 그것을 북한 인민들이 반길까? 남한 사람들에게도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남한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모순과 병폐를 더욱 구조화하고 확장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과 빈곤에서 벗어나는 건 긴급하고도 절박한 과제일 것이다. 그래서 경제발전과 물질적 삶의 개선을 추구하는 것이 당장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남북 사이의 경협 확대와 경제적 결속 강화가 평화 흐름의 퇴행을 막는 일종의 ‘안전판’ 구실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남한 자본주의의 무분별하고도 공격적인 팽창으로 귀결되어선 안 될 일이다. 번영이 단순한 물질의 번영에 그친다면 그것은 사이비 번영이자 껍데기 번영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이 지구와 한반도가 처한 생태적 조건에서 물질적 번영의 끝없는 추구는 지속가능성 원리와 양립할 수 없다.
평화도 마찬가지다. 궁극적인 평화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 사라진 상태다. 지금 주로 논의되고 있는 남북 사이의 평화는 말하자면 인간들끼리의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평화를 이루자는 거다. 하지만 참된 평화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평화를 바탕으로 할 때 온전히 꽃필 수 있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삶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더 높고 깊은 평화, 곧 생명평화다. 자본주의적 경제 가치와 돈의 논리를 앞세우는 평화가 이런 평화와 거리가 멀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자연을 과잉 파괴, 과잉 착취, 과잉 소비함으로써만 굴러갈 수 있는 게 자본주의 성장 경제의 민낯인 탓이다. 이런 시스템을 북한에 이식하는 게 평화일까? 그건 남한의 자본가나 물신주의자들이나 기뻐할 일이 아닐까?
남북 정상은 기념식수를 하면서 한라산과 백두산의 흙을 함께 뿌렸다. 한강 물과 대동강 물도 함께 주었다. 그 흙과 물이 섞이고 어우러져 무럭무럭 평화의 나무를 키울 것이다. 흙과 물이야말로 진정한 평화의 상징이 될 만하다. 돈은 평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평화를 일구어가는 과정에서 돈이 일시적이고 부분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다. 현실적으로 이것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돈의 힘과 자본의 이윤 논리가 지배하는 곳에 사람, 자연, 생명, 공동체, 민주주의의 가치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참 평화는 이런 가치들과 더불어, 이런 가치들 속에 깃들기 마련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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