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떠나자] 스페인 빌바오 - 스페인인 듯, 아닌 듯

수, 2018/02/28- 13:59 익명 (미확인) 에 의해 제출됨
관련 개인/그룹
지역

스페인 빌바오
스페인인 듯, 아닌 듯

 

글.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좋은 친구이자 부부다.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며,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 달에 한 도시》 유럽편, 남미편, 아시아편 《없어도 괜찮아》,《사랑한다면 왜》가 있고, 현재 ‘채널예스’에서 <남녀, 여행사정>이라는 제목으로 부부의 같으면서도 다른 여행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날씨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삶의 깊숙한 영역까지 파고든다. 한 달씩 머무는 여행을 통해 그 지역 날씨, 지형, 생활 방식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는 재미를 알게 됐다. 바람과 비가 많은 북쪽의 바스크 지역 사람들은 스페인 특유의 활기찬 DNA보다 근면 성실함이 몸에 밴 듯싶다. 스페인 내에서도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곳도 바스크이다.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과일이 떨어지는 축복 받은 태양이 없으니 부지런히 일할 수밖에! 그래서 오래전부터 바스크의 주도(主都), 빌바오는 조선, 철강 산업 등 공업 분야에서 강세를 보였다.

 

작은 도시 빌바오만의 투박한 매력

빌바오를 소개할 때 ‘모더니즘의 도시’라고 일컫는다. 서유럽의 어떤 세련됨이 이곳에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지방 중소도시만의 투박함과 정겨움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빌바오의 첫인상은 쌀쌀맞을 정도로 무신경한 사람들이다. 눈이 마주치면 ‘올라Ola부터 외치던 버릇이 무색해지게 상점 외에는 인사를 주고받지 않는다. 휴대폰을 바라보는 사람도 많고 자리를 양보해도, 문을 열어줘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어깨를 부딪쳐도, 길을 방해해도 미안하다는 소리를 안 한다. 종민은 경상도 어디에 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태도가 투박하다는 말을 꺼냈다. 이 투박함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런데 겉으로 살살거리는 친절함만 없을 뿐 말을 걸어오는 현지인들은 어느 도시보다 많았던 곳이기도 하다.

 

혹자는 어느 도시를 가리켜 ‘반나절이면 다 보는 도시’, ‘하루면 끝나는 도시’라는 표현을 쓴다. 안타깝게 ‘빌바오’도 한국 여행객들 사이에선 그런 불명예를 안고 있는 도시인가 보다. 기껏해야 올드 시티를 돌아다니거나 구겐하임 미술관을 둘러보는 게 전부인 걸 보면 말이다. 천천히 동네를 거닐면서 시내 그리고 범위를 근교까지 확장시키는 달팽이 여행법을 선호하는 우리도 생각보다 작은 도시 규모에 당황했다. 

 

가까이 보아야 더 아름다운 도시 

하지만 빌바오 구석구석 바스크인의 섬세한 손길이 닿는 건축을 보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지하철 내부에 들어서면 차가운 무채색의 콘크리트 벽이 승객들을 맞이한다. 유럽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오줌 냄새도, 뉴욕 지하철의 상징과도 같은 큰 쥐도, 하다못해 어지러운 광고판도 없다. 빌바오의 첫인상과 닮아 있는 깔끔한 회색빛 콘크리트가 바스크인의 세련되고 모던한 감각임을 눈치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사람도 건축물도 빌바오의 전체적인 인상이 그렇다. 가까이 보면 감흥이 덜 하나 멀리서 보면 속뜻을 품고 있다. 바스크의 지형도 비슷하다. 가까이 보면 대서양과 면한 항구 도시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하지만 이들이 바다를 이용해 항로를 개척하고 무역에 힘쓴 역사보다 산에서 목축을 하고 땅을 일구며 산촌 사람으로서 살아간 세월이 훨씬 길다. 그래서인지 해산물만큼이나 많이 먹는 음식이 출레타(chuleta)①라고 하는 구운 고기 요리다. 

 

지하철

 

산으로 막혀 있던 바스크는 나름의 언어로 자신들만의 고립된 세상을 만들었고 ‘나는 누가 뭐래도 내 갈 길 가겠소’라는 뚝심 혹은 고집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성격을 지니게 된 듯하다. 가까이 보면 무뚝뚝하고 멀리서 보면 속정이 깊은 바스크인의 성격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만나다 

이렇게 고립된 세상에 독일 나치군이 폭격을 가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단 생각이 든다. 게르니카, 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작은 강줄기가 바다로 흐르는 평화로운 바스크 마을 중 하나이다. 1937년 스페인 내전 중, 프랑코 군을 지원하던 독일 콘도르 군단이 게르니카를 폭격한다. 1,500여 명의 마을 주민이 사망한 이 비극적인 참상을 전해 들은 피카소는 <게르니카>라는 그림을 그리는데 우리에게는 이 작품으로 유명하다. 비록 모조품이라도 실제 참상이 일어났던 장소에서 마주한 그림이라 더 참혹하게 다가온다. 

 

프랑코 군이 하필 게르니카를 지목한 건, 그곳이 바스크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키며 스페인 정부로부터 독립을 외치고 고집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눈에 가시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픔을 간직한 곳의 사람들은 그 아픔이 치유되기까지 긴 시간 동안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게 된다. 가까이 보이는 바스크는 멀쩡해 보이지만 그 안에 상처는 어디까지 아물었을까? 

 

게르니카

 


① 많은 바스크인들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는데 아르헨티나에서 먹는 아사도가 바스크에서 유래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육질이나 굽는 방식이 흡사하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