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듣자] 말러 <지상의 삶>과 <천상의 삶>

수, 2018/02/28- 14:35 익명 (미확인) 에 의해 제출됨
관련 개인/그룹
지역

말러 <지상의 삶>과 
<천상의 삶>

 

글.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MBC 해직PD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다』, 『클래식 400년의 산책』 등.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지상의 삶Das Irdische Leben>, 배고픈 어린이와 어머니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된 노래다. 

 

1절 엄마 배고파요, 빵 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사랑하는 아가야, 내일이면 옥수수를 딴단다.

2절 엄마 배고파요, 빵 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사랑하는 아가야, 내일이면 타작을 한단다.

3절 엄마 배고파요, 빵 주세요, 배고파 죽겠어요. 잠시만 기다려라, 사랑하는 아가야, 내일이면 빵을 굽는단다.

4절 빵이 구워졌을 때 아이는 죽어서 관에 누워 있었다. 

 

말러 <지상의 삶>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트비히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Mahler Irdische Leben Ludwig를 검색하세요.

 

 

우리네 ‘지상의 삶’은 늘 이런 걸까? 굶주린 아이들뿐 아니다. 형제복지원 희생자 한종선 · 최승우 씨가 겨우내 국회 앞 농성을 벌였지만 국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법외노조의 굴레를 풀어달라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단식농성도 아무 대답을 듣지 못했다. 1975년 3월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된 113명의 선배 언론인 중 29명이 세상을 떠났고, 살아계신 분들은 팔순을 바라보고 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촛불 1년을 맞는 지금, 우리 사회는 전혀 정의롭지 않다. 

 

<지상의 삶>의 노랫말을 쓴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1788~1866는 마흔다섯 살 되던 1833년 두 아이를 잃었다. 그는 죽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하루 한 편씩 시를 썼고, 2년 동안 눈물처럼 고인 시(詩) 428편을 묶어서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펴냈다. 죽음과 이별에 대해 남달리 민감했던 말러는 이 시들에 깊이 공감했고, 이 중 다섯 편을 골라 연가곡을 만들었다. 태양 아래 정의는 없는 걸까? 죄 많은 나는 여전히 눈을 들어 빛을 바라보는데, 어째서 순결한 아이는 먼저 눈을 감았을까? 자책과 회한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돌이킬 수 없다. 이게 꿈일 뿐이라고 상상해 보지만 소용없다. 

 

아이들은 잠깐 놀러 나갔을 뿐이야. 나는 생각하곤 하지, 곧 돌아올 거라고. 햇살 화창하니 걱정하지 말자, 아이들은 잠깐 산책을 간 거야. 저 언덕 너머 잠시 여행 중이야.

- 말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중 

 

말러는 19살 연하의 아름다운 알마와 결혼하고 빈 국립 오페라의 음악감독이 될 무렵인 1901년~1904년 사이에 이 연가곡을 작곡했다. 하필 가장 행복한 시기에 이렇게 어두운 곡을 썼을까? 알마는 남편이 이 곡을 쓰는 걸 불길하게 여겼는데, 이 곡이 예언이라도 한 듯, 1907년 큰딸 마리아 안나가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은 말러 자신의 죽음이기도 했다. 말러는 뤼케르트의 시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에 선율을 붙였다. 

 

오랫동안 세상과 떨어져 이제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네. 사람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상관없어, 사실 죽은 거나 다름없으니. 나는 이 세상의 소란에서 멀리 떨어져 조용한 평화를 누리고 있네.

 

지금 이 땅에서 <나는 세상에서 잊혀지고>를 자기 노래로 느끼는 분들이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이 모든 좌절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간다. 말러는 <지상의 삶>과 대비되는 <천상의 삶(Das Himmlische Leben)>도 작곡했다.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던가? 이 곡은 어린이가 상상하는 천상의 행복을 소프라노가 노래한다. 

 

우리는 천국의 기쁨을 누리니 세속의 것은 필요치 않네. 만물은 평온하고 우리는 천사의 삶을 누리네. 우리가 뛰며 춤추고 노래하니 하늘에서 베드로가 지켜보네. 

 

말러 교향곡의 엄청난 규모에 질린 분들은 이 <천상의 삶>이 피날레로 들어간 4번 G장조를 먼저 들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말러의 교향곡 중 가장 부드럽고 유순하다. 연주시간도 비교적 짧고(55분!) 오케스트라 규모도 작은 편이다. 

 

말러 교향곡 4번 G장조

지휘 게오르크 숄티 / 연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소프라노 키리 테 카나와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Mahler 4 Solti Chicago를 검색하세요.

 

 

1901년, 말러는 결혼을 앞둔 알마에게 이 곡의 1악장 주제를 피아노로 연주해 주었다(링크 00:13). 알마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곡이 하이든과 뭐가 달라요?” 말러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곧 알게 될 거요.” 하이든의 교향곡을 별 어려움 없이 들을 수 있는 분이라면 말러 교향곡 4번도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1901년 뮌헨에서 초연했을 때 청중들은 말러가 이 단순하고 유쾌한 음악으로 자신들을 조롱하고 있다고 오해했다. 장난스런 방울 소리와 하이든 풍의 주제 선율에 “뭐 이런 음악이 다 있어?”라는 중얼거림이 나왔다. 특히 피날레 <천상의 삶>은 충격적이었다(링크 46:12). “교향곡은 뭔가 거창한 피날레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당시의 통념에 비추어 볼 때 너무 하찮은 피날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러 스스로 밝혔듯, 이 곡은 심한 산고 끝에 탄생한 진지한 작품이다. 말러는 이 곡에서 ‘영원한 현재로서의 세계’를 그리려 했다. “아주 파란 하늘을 연상해 보자. 하늘ㄹ은 가끔 어두워지거나 유령이 나올 듯 소름 끼치게 변하기도 하지만 천국 그 자체는 결코 어두워지지 않으며, 언제나 푸르게 빛난다.”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천상의 삶’을 묘사한 이 교향곡에서 깊은 고통과 어두움을 보여주는 대목들은 ‘지상의 삶’을 반영한다고 해석했다. 


말러알마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지휘자 구스타프 말러와 그의 연인, 알마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