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 차별과 배제의 또 다른 단면
김준현(건강세상네트워크 환자권리감시사업단)
응급실 야간·휴일의 비상진료체계를 둘러싼 논란이 식지 않고 있다. 개정 응급의료법에 따라 당장 8월부터는 전문의가 직접 응급환자를 진료해야 하는데, 여기서 전문의 ‘당직’이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즉, 법안이 시행되더라도 당직전문의는 굳이 병원 내에 상주할 필요는 없다. 병원 밖에 어느 장소에든 대기하고 있다가 비상호출이 있으면 응급실로 달려오면 된다. 당직 전문의라고 해서 병원 내 상주를 강제하는 것은 아니며 병원 외부에 있어도 무방하다는 것이 복지부의 해석이다. 병원계는 현실을 반영한 타당한 조치라고 보는 반면, 시민단체는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사실, ‘전문의의 직접 진료’를 강제한 배경은 저년차 전공의나 인턴이 중심이 되는 응급진료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겠다는 취지였다. ‘대구 영아사망사건’에서 보여 주 듯 실제의 진료를 인턴이 수행하던 와중에 전문의 호출이 불가능 하다는 이유로 적시에 치료를 못 받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것이 문제가 되었다. 결국 환자와 보호자가 다른 의료기관을 헤매다가 ‘치료지연’으로 사망을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응급의료법에서도 규정하고 있듯이 응급환자는 즉시 응급처치를 받지 않을 경우에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수 있는 환자들이다. 통상적인 입원 및 외래치료를 요하는 환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상황과 조건에 놓이게 된다. 다시 말해, 생명 보존을 위해 일반 환자들과는 구분되는 ‘예외적인 조치’가 강제되어야 하는데 ‘공공성’이 취약한 민간중심의 의료체계에서는 이를 담보하기가 쉽지 않다. 가용한 자원 하에서 응급진료 보다는 입원·외래 진료나 주간 진료에 집중하는 것이 병원경영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응급환자가 그다지 반가울 리가 없다.

사보험 중심의 미국사회 조차도 응급의료는 ‘예외적인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민영의료보험회사들의 비용절감이나 이윤추구 행태들이 적어도 응급의료에서는 잘 먹혀들지 않는다. 지불능력을 이유로 환자를 배제하거나, 특정 민영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응급실 수속을 거절하고 또는 비용절감을 이유로 환자를 다른 의료기관으로 이송키는 등 응급실에서의 진료거부 및 환자유기(patient dumping)는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이른바 ‘환자유기 금지법’이라고 알려져 있는 미국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환자의 지불능력이나 국적, 시민권 유무와 관계없이 응급의료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차별 없이 제공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민간 중심의 응급의료 제공 방식은 한계가 있다. 응급의료라고 해서 의료기관의 이윤동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응급실 운영이 비효율을 낳는다면 굳이 응급의료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응급환자가 오히려 일반 환자 진료에 방해가 될 뿐이다. 당직 전문의가 병원 내 상주하는 것도 껄끄럽고, 당직 근무를 감안해서 인력충원을 할 리도 만무하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응급실 진료거부나 고의적인 이송 등을 배제하기 어렵고 이로 인한 ‘치료지체’ 등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응급의료는 의료기관의 사적인 이윤동기가 개입되지 않은 ‘예외적인 영역’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윤동기가 개입되는 한 응급진료로부터 국민들이 부당하게 배제되는 등 부작용 발생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응급의료의 ‘예외성’은 공공성을 중심으로 해석되어야 하고 정책방향도 이에 따라 재수정 되어야 한다. 응급의료는 국민들의 기본적인 권리이자 국가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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